코로나 시대, 독일에서 살고 있는 동양인 여성의 삶은 안전한가?

“칭챙총”, “어디서 왔냐? 독일에 결혼하러 왔느냐?” 노골적인 플러팅

나와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 불쑥 “칭챙총(중국어 소리를 흉내 내는 말)”이란  말을 던지거나, 다짜고짜 “니하오” “곤니찌와” “차이나?” “베트남?”이라고 말을 걸거나, 노골적으로 플러팅(flirting, 호감을 나타내거나 얻기 위한 목적으로 유혹하는 행위)을 하면 기분이 좋지 않다. 불쾌하고 화가 난다. 특히 한국 여성에게 “한국 여자들은 쉽더라” “하룻밤 자는 데 얼마냐” “맛있게 생겼다” “독일에 결혼하러 왔느냐”고 말하는 (백인) 남자들을 보면 같은 인간으로서 어떻게 그런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그런 말 하지 말라, 그만해라, 진짜 알고 싶어서 하는 말이냐, 당신이 한 말은 성희롱적이고 차별적이다”라고 말하면 사과하지 않거나 “장난이다, 너는 유머를 모르냐”고 한다. 심지어 “(플러팅하는 것은) 독일 문화다, 칭찬이다”라는 허무맹랑한 말까지 한다. “모욕적이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고 항의해서 끝까지 사과를 받아내기도 하지만, 그러고 나면 진이 다 빠진다. 

그런 그들은 요즘 하나를 더했다. “코로나 인종차별”

코로나가 한창이던 지난달, U반에서 한 남자가 나를 보더니 “칭챙총”이라고 했다. 보통 “당신 나 아냐? 그런 말 하지 마라”고 대꾸하지만, 그날은 피곤했고 언쟁을 하고 싶지 않아 ‘그만하라’는 뜻으로 불쾌한 얼굴로 그 남자를 빤히 바라봤다. 그는 건너편 남자에게 ‘저 여자 왜 저러냐’는 듯한 표정으로 “코로나”라고 말하며 서로 웃었다. 나는 그 사람들과 같은 칸에 있기 싫어 벌떡 일어나 다른 칸으로 갔다. 뒤에서 “그래, 내가 원하던 게 그거였어”라는 소리가 들렸다. 

한 여성은 얼마 전 혼자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근처에 있던 남자 무리 중 한 명이 그에게 다가와 얼굴 가까이에 대고 “콜록콜록” 기침하는 시늉을 했다. 그 장면을 보고 있는 남자들이 깔깔거리며 웃었고, 다른 한 명이 또 와서 똑같이 기침을 해댔다. 여성은 혼자서 남자들을 상대하는 게 무섭고 당황스러워 자리를 피했다. 집에 돌아와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밀었지만, 오히려 제대로 화를 내거나 반응하지 못했던 자신을 탓했다. 

혐오와 폭력으로 이어지는 범죄 

유럽에서도 COVID-19 의 위험이 제기되고, 이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시작됐다고 보도되면서 아시아 인들에 대한 공포와 혐오는 더욱 분명해졌다. 1월 말 한 중국인 여성이 베를린의 한 길거리에서 독일 여성 2명에게 이유 없이 인종차별이 담긴 욕설과 폭행을 당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독일의 대표 주간지인 슈피겔이 2월 표지에 “코로나 바이러스(CORONA-VIRUS)”를 다루면서 방독면을 쓴 아시아인과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라는 문구를 포함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주독 중국대사관은 성명을 내고 “공포를 일으키고 손가락질을 하거나, 심지어 인종차별을 일으키는 것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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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egel 2020/6 표지

지난 4월 25일, 베를린 U반 안에서 한국인 유학생 부부가 5명의 독일인 남녀에게 인종차별과 성희롱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특히 가해 남성 중 한 명은 한국인 여성에게 혀를 날름거리며 “결혼은 했냐, 너 섹시하다” 등의 발언을 하며 여성의 손에 자기 입을 갖다 대며 희롱했다. “그만하라! 너희 행동은 인종차별적이다”라고 하는 말도 소용이 없었다. 여성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사건 경위를 듣고 “인종 차별적이라고 볼 수 없다”며 사건 접수를 하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인종차별주의자란 말을 사용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여성은 곧바로 주독 한국대사관 긴급 영사전화를 했고, 대사관 측이 경찰과 통화한 뒤 사건은 접수됐다. 그러나 경찰은 서류에 ‘성희롱’을 뺀 채 ‘모욕’과 ‘폭력’ 혐의로만 사건을 접수했다. 

독일의 언론 보도 

코리엔테이션(Korientation e.V.)은 아시아계 독일인들이 모인 이민자 조직으로, 독일 사회, 문화, 미디어, 정치 등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제시하는 활동을 하는 단체다. 이들은 지난 1월부터 코로나 이후 더욱 심각해진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 문제와 이를 조장하는 언론과 미디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들은 독일 언론과 미디어에서 사용하는 이미지와 언어가 현실에서 어떻게 혐오와 차별로 반영되는지 밝히고 있으며, 이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코로나 시기 아시아인들에 대한 인종차별과 폭력을 다루는 매체도 늘었다. 한국 여성인 박초이 씨는 Rbb Kultur(베를린-브란덴부르크 방송)와 인터뷰(2020.04.03)에서 최근 한 남성로부터 “나는 한국 여자를 좋아한다. 나는 이미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말을 들었고, 모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독일에서 나고 자란 빅토리아 우 씨는 타게스슈피겔과의 인터뷰(2020.04.18)에서 집 근처를 지나가던 중에 한 남성이 “너한테 소독 스프레이를 뿌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RBB24 방송과 인터뷰한 또 다른 한국 여성 박민지 씨는(2020.04.29) 최근 길거리에서 10대 남자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코로나!! 코로나!!”라는 말을 들었다. 15년 가까이 독일에 산 그는 “독일인 남편과 다닐 때는 그런 일을 한 번도 당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MDR(중부독일방송 2020.04.30)에서는 “나를 코로나로 부르지 마라(Don’t Call Me Corona)”는 제목으로 6명의 중국인(5명이 여성)이 최근 코로나와 관련한 인종차별 경험을 인터뷰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됐다. 

여성단체, 아시아 이민자단체, 독일 내 시민단체, 정당의 연대 필요

아시아인들에 대한 혐오와 폭력 범죄를 우려하는 각 국가 대사관들의 입장 발표가 있었지만, 나의 삶은 여전히 불안하다. 참다못해 독일에 거주하는 한인 여성들로 구성된 미투 아시안즈(Metoo-Asians e.V.)가 “코로나바이러스는 국적을 모른다 #Corona_kennt_keine_Nationalität”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독일 내 아시아 이주민들의 사회정신건강증진을 위해 활동하는 겝게미(GePGeMi e.V.) 또한 코로나 상황에 증가하는 인종차별 사례를 접수받고, 독일 반차별 교육사업 연맹(BDB e.V.)과 연대하여 활동하고 있다. 최근 한인 부부 피해 사건이 발생했던 베를린 샬로텐부르크-빌머스도르프 구의 독일 녹색당(Bündnis 90/Die Grünen)은 이 사건을 심각한 인종차별과 성차별 사건으로 파악하고 오는 지역 모임의 의제로 다루기로 했다. 베를린에서 발생한 인종차별 문제는 해당 사이트에 익명으로 고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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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로텐부르크-빌머스도르프 녹색당

한 독일 남성이 말했다. 코로나로 인해 처음으로 차별을 당해 봤다. 본인은 감염되지도 않았고, 건강한데 사람들이 자신을 피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랬구나”라고 말했지만 ‘이제라도 경험해서 다행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공기처럼 차별과 폭력, 성희롱을 마주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B.C(기원전)는 Before Corona(코로나 전)라고 하지 않은가.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독일 사회는 그들이 진짜 열린 사회(offene Gesellschaft)를 지향하는가 아닌가의 기로에 섰다. 이들이 두려워하는 진짜 바이러스는 무엇인지, 그 바이러스는 어디에서부터 기인하는지, 이 바이러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가치를 기초로 그들의 삶과 태도를 재정립해야할지 사유하고 배워야 할 때다. #Rassismus_ist_ein_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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