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격리일기

*작년 연말 독일은 두 번째 록다운이 진행됐다. 크리스마스를 가족들과 보내기 위해서 그 전까지 감염자 수를 최대한 낮춰보겠다는 독일 정부의 의지였다. 가족은 없지만, 혼자 혹은 함께 격리시기를 무사히 잘 보냈다. 소나기랩 동료가 제안한 격리 일기를 쓰면서, 글쓰기에는 사람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했다가 굳고 정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을 또다시 깨달았다. 격리 일기가 끝나갈 때 즈음, 나는 누구가를 알게 됐고, 함께 코로나에 걸려 격리를 목적으로 2주간의 합숙 끝에 ‘관계’의 길에 들어섰다. 지난 2차 코로나 록다운은 내 인생에 잊혀지지 않을 시간이 될 것 같다.


2020/12/16

오늘은 9시부터 소리가 들린다. 그제는 아직 해도 안뜬 7시 경부터 연습을 시작했다. 그의 바이올린 소리에 따라 나도 일을 시작한다. 음악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는 성실하고 열정적인 학생일 것 같다. 어느 날은 저녁 11시까지 소리가 계속된다. 같은 곳을 계속 반복해서 연습하는 그의 소리는 끈기 있고 지독하다.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손만이 아니라 모든 육체와 정신이란 생각을 한다. 그의 정신은 연주하는 손가락만큼 강인할 것이다.  

그의 바이올린 소리는 나를 부끄럽게 한다. 나는 잠옷을 외출복으로 갈아 입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6시간 근무 중 3시간은 딴 짓을 하는 것 같다. (지금도 나는 일하다 말고 그의 바이올린 소리가 들리자 이 글을 쓰고 있다) 오늘 꿈에 소장님이 나와서 이런식으로 일 할거면 그만두라고 했다. 빈정거리며 나의 게으름과 무능력함을 지적했다. 실제의 그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겠지만, 여튼 나는 나에 대하여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연주 소리가 잠깐 멈췄다. 그도 나처럼 딴청을 피우고 있는 걸까? 오늘은 강화된 록다운 1일 차다. 


2020/12/19

요즘 꿈에는 대부분 여성들이 나온다. 며칠 전엔 M가 나왔다. 꿈에서 본 M는 굉장히 슬퍼보였다. M가 나에게 말을 건냈다. “Wo bist Du?(너 어디에 있어?)”. 작년 10월 10일 내 꿈에 나온 그는 울면서 말했다. “Wo bist Du? E ist tot(너 어디에 있어? E가 죽었어)” 나는 E이 설마 우리의 이별에 자책하며 죽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며 새벽 3시에 전화를 했더랬다. 착각도 유분수지. 웬걸, E은 이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나와의 관계를 끝내고, 그동안 몰래 만나온 애인과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그런 날들이었다. 예상을 뛰어 넘으며 우리 일상은 너무도 멀쩡하게 제 몫을 다하며 살아진다.

아침에 일어나 나는 M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별 일 없을 거야. 그것은 나의 망상임을 기억했다. 신기하게 어제 M에게서 크리스마스 카드가 도착했다. 다른 두 개의 반가운 편지와 함께 도착해서 생각보다 마음이 많이 쿵쾅쿵쾅 뛰지는 않았다. M만큼 나를 떠올리고,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래도 M의 카드는 가장 나중에 읽고 싶었다. 익숙한 필체로, M답게 간결하게, 크리스마스 축하와 새해 덕담을 담아,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M는 평소 받는 사람 이름과 주소를 써야 하는 자리가 모자를 정도로 빡빡하게 근황과 고민을 털어 놓는 나의 엽서를 좋아했다. 가끔 우표 값이 모자란대도 자신에게 도착한 나의 엽서와 편지를 신기해 하며, 나를 못말려 하며, 나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E보다 M가 더 많이 생각난다. 두 번의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낸 우리의 시간에 M는 나에게 참 많은 선물을 주었다. 니콜라스데이 선물은 물론이고 아드벤트 칼린더, 식탁보, 창가에 놓는 촛불 장식, 오랫동안 대물림 되는 수제 크리스마스 장식 등을 주었다. 크리스마스 당일,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 M와 A가 몇 주 전부터 차곡차곡 쌓아둔 선물 꾸러미를 풀어보면서 나는 엉엉 울었더랬다. 그 마음이 너무 사랑스럽고 고맙고 따뜻해서. 그 날 만큼은 예외적으로 M와 A가 만든 거위 요리를 먹었다. 거위 기름으로 만든 소스를 듬뿍 적셔 먹는 나를 M는 흐뭇하게 쳐다 보았다.

M가 나를 좋아하는 것은 내가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자식이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사랑이 가끔 거짓말 처럼 느껴졌다. 동양인과는 두 마디 이상 대화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 그들이 나를 만났을 때 얼마나 당혹스럽고 신기했을까? 한번은 A가 내게 눈을 한 번 감아보라고 했다. 속눈썹이 짧게나마 그 곳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너무도 순진하게 M에게 “거봐, 있잖아” 그랬다. 나는 그 순간 어이가 없어서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 우리는 그렇게, 처음이라, 서로에게 많은 실수를 했다.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오늘 기어이 그것을 기억해 내고, 그 실수를 딛고 배움으로 나아간다. 어쨌든 M는 나를 한 사람으로 좋아했던 것 같다. 나와 E이 헤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난 뒤, M은 마지막으로 내게 문자를 보냈다. “Ich habe dich gern gehabt(너를 정말 좋아했어)” 

어제 M의 카드가 말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었다. 


2020/12/22

H의 제안으로 온라인으로 연극 한 편을 보게 됐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는 배우들이 직접 한 자 한 자 써내려간 것 같은, 그동안 자신의 삶에서 나타난 고통을 목격하면서 증언하는 내용이었다. 근육병, 조현병, 난소혹, 유방암, 크론병, 턱관절 염증에서 시작해 자궁 내막증으로 평생을 치료와 재활로 고통과 살아간 사람 6명의 이야기. 

첫 번째 배우는 대부분의 대사를 말할 때 울었다. 소리없이 흐르는 눈물과 흐느낌은 내게도 익숙한 것이라 나는 그를 따라 내내 울어버렸다. 스치듯 판단하며 지나쳐 버렸던, 떠나와 버렸던 많은 이들을 떠올렸다. 내게도 누군가 그렇게 해주길 기대하듯, 나도 “우리 또 만날래요, 다음주에 또 볼까요?” 묻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무표정에 사랑스러운 목소리를 가진 두 번째 배우는 자신에게 들리는 환청을 “세상의 연약한 것들이 낸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은 내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망상은 “소외된 꿈들이 짓는 몹시도 뜨거운 희망”이라고 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말이 있을 수 있을까? 그가 말한 대로 고통이 키운 어른거리는 한 점의 빛은 그렇게 연약하고 소외된 것들을 비출 것이다. 나도 그를 따라 그 빛처럼 살고 싶다 생각했다.

오늘도 어떤 모임에서 한 자매의 배우자를 위해 기도드렸다. 그는 아무 말도 안 꺼냈는데, 그의 어머니와 또 다른 분은 공개적으로 그런 기도 제목을 내고 기도하자고 말했다. 순간 그의 표정에서 불쾌감과 당혹감, 창피함을 보았다. 어떤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언제까지나 보려고 하지 않는. “어진 자매에게 좋은 만남이 생기길 내가 기도하고 있어요.”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생육하고 번성하는 사명은 내 것이 아니에요. 그러니 아무도 내 파트너십에 대해 기도하지 마세요”

아무것도 모른다. 나는 아픈 사람의 삶에 대해 알지 못한다. 아픈 사람을 찾아가지 않았고, 이해하려고, 더  알려하지도 않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게 어디 있어, 기도해야지, 하나님이 낫게 해주실 거야” 라는 말 뒤에 내 몰이해와 무관심을 숨겼다. 그가 녹내장에 걸렸다고, 안압이 높아져서 실명될 수도 있다고 했을 때, 나는 걱정과 안타까움을 표했지 자세히 묻지 않았다. 건강해야 할 사람이 그래서는 안될 일을 당했구나 했다. 실은 걱정 대신 질문을 했어야 했다. 오늘은 어떠냐고, 오늘은 어떤 불편함을 새로 발견하게 됐냐고. 그가 자신의 고통을 언제라도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시군요, 네 잘 알았습니다. 정신 없으실 텐데, 이렇게 전화까지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조별 과제는 걱정 마세요. 아프면 그럴 수도 있죠. 제가 다른 분들께 잘 말씀 드릴게요. 혹시 수업에는 나오실 수 있어요? 혹시 못 나오시면 제가 교수님께 잘 설명 드릴게요. 너무 신경쓰지 마시고 잘 치료 받으세요. 전화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그 때 이 말을 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픈 사람의 책임은 낫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목격하고 증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압박 속에, 스스로를 가두지로 않기로 했습니다. 이제 나는 완전한 치유가 아닌 완전한 치유로부터의 자유를 원합니다.” 

아픈 사람의 고통이 사라지길, 어서 다시 정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되길 빌었던 순간이 있었다. 그는 자기 의지대로 되지 않는 정신을 가까스로 붙들며 내게 울며 말했다. “미안해 어진, 나도 낫고 싶어. 그런데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아” 우리는 서로를 안고 엉엉 울었다. 그 때 고통스러워하고 혼란스러워하던 그에게 정상을 기대하지 않았더라면, 정상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면, 아픈 그를 다그치지 않았더라면, 자기가 아파서 미안하다고 말하도록 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우리 곁에 여전히 있을까?

배우들의 삶의 이야기. 아픔과 고통을 이야기 하는 것 같았지만, 그것에는 사랑, 우정, 화해, 희망, 세상을 향한 외침, 의지, 깨달음, 자유를 목격한 이야기였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줘서 고맙다고, 내 앞에서 용감하게 당신의 보석같은 눈물을 흘려주어 고맙다고, 당신의 삶을 나눠주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2020/12/24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낼 수 없다며 K와 Y를 만났다. 야심차게 샴페인 2병, 화이트 와인 2병, 로제 와인 2병을 준비했지만, 그것은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2병째 부터 알아봤다. 우리는 결국 3병을 다 마시지 못했다. 

사실 나는 맥주파다. 맥주 중에서도 샬로텐부르크 맥주인 엥겔하트, 더워서 아무것이라도 상관 없을 때 먹는 필스를 빼고는, 흙맥을 좋아한다. 흙맥을 마시면 기분이 좋거든요. 사실 흙맥을 마시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사랑했던 사람들, 잘 지내고 있길 바라는 사람들. 용서하고 용서받고 싶은 사람. 자신은 맥주를 마시지 않고 차로 나를 데려다 주는 것보다, 같이 마시고 손을 잡고 집에 함께 돌아오는 것이 좋다. 참 행복했다. 내가 그런 행복을 누려도 될까 싶을 정도로, 우리는 사랑했고, 사랑받았다. 몇 번 고민했지만 M에게 보낸 편지에 여름에 찍은 내 사진을 동봉했다. 확신이 없었지만 앤리스 먼로의 디어라이프 마지막 구절도 적었다. 

“Ich fuhr nicht nach Hause, als sie im Sterben lag, und ich fuhr auch nicht zu ihrer Beerdigung. Ich hatte zwei kleine Kinder und niemanden in Vancouver, bei dem ich sie lassen konnte. Wir hätten uns die Bahnfahrt nur schwer leisten können, und mein Mann verachtete konventionelles Verhalten, aber warum ihm die Schuld geben? Ich empfand genauso. Wir sagen von manchen Dingen, dass sie unverzeihlich sind oder dass wir sie uns nie verzeihen werden. Aber wir tun es – wir tun es immerfort.

나는 그녀가 죽었을 때 집에 가지 않았고, 그녀의 장례식에도 가지 않았다. 내게는 두 아이가 있었고, 밴쿠버에는 아이들을 맡길만한 사람이 없었다. 기차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던 데다가, 내 남편은 관습적인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렇다 한들 그를 탓할 수 있을까?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는 세상에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 많고, 우리 또한 용서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용서받지 못할 일을 하며, 끊임없이 용서하며 살아간다.” 

내가 죽어도 안오겠다는 말인가, 우리를 용서하겠다는 말인가, 이젠 우린 안볼 사이고 각자 인생을 잘 살아가자 라고 하는 말인가. M는 그렇게 생각할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잘 지내고 있어, 나는 여전히 너를 기억하고 있어, 우리는 그렇게 용서 받고 용서 하면서 사는 거야, 그러니 너도 잘 지내. 

그들은 지나갔지만 나는 현재의 사람들과 진심을 나누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K의 섬세하고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알게 되어 기쁘다. 내가 했던 말들을 기억하며, 선물과 편지를 준비해온 K를 보며 새삼 이런 사람도 있구나 생각했다. 준비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만든 음식들을 나누고, 마음을 이야기하고, 폴라로이드로 사진을 찍고, 내친김에 연극까지 함께 봤다. 한명은 졸고 다른 한명은 감정이입 제대로 하며 눈물을 흘리며 본다.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는 그 사람의 고유의 모습으로. 


2020/12/25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말을 하면서도 동시에 그런 힘을 갖지 않고 싶은 마음도 있다. 실은 알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는 것이다. 알면 머리 아프고, 힘들어진다. 번민만 늘어난다. 사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이상은 크나 현실의 나는 형편 없어 괴로울 때가 있다.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보여지지 않은 것들을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2020/12/28

거리 두기. 친구가 마음의 여유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기. 혼자 계속 상상하고 추측하지 않기. 반응이 없더라도 초초해하지 않기. 요 며칠 설마 임신이면 어떻하지 생각했다. 모든 것이 장난 같고, 내 행동과 생각이 얼마나 경솔한 것이었나 생각했다. 그동안 했던 우려, 걱정, 두려움, 기대, 다짐 등이 모두 뒤엉켜 알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두 사람이 임신 사실에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며 행복에 겨워하는 장면은 내게 해당하지 않았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배란 주기 어플을 깔아 날짜를 확인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또 다른 어플에 똑같은 날짜를 부질없이 입력해봤다. 수정 이후 임신 테스트를 할 수 있는 날짜는 언제이며, 임신 증상은 어떠하며, 임신을 원하지 않을 때와 원할 때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서도 검색해보았다. 며칠 전 아주 경솔하게 지원서를 써서 낸 것도 여전히 마음의 찝찝함으로 남아 있다. 나는 무슨 생각으로 사는 것일까. 그러지 않으려고 하지만, 가끔 아빠가 2008년 즈음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아빤 나에게 건방진 새끼라고 했다.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고 지멋대로 사는 모습이 아빠가 봤을 땐 한심하고 괴씸했을까. 나의 경거망동한 행동이 이번 일도 자초했을까. 


2020/12/31

독일은 실베스터(연말연시)를 대단하게 보낸다. 댕~ 자유의 종소리를 듣거나, 일출을 보러가 자연의 위대함 앞에 말 없이 겸손과 새로운 다짐을 하는 한국과는 다르게, 이 곳 사람들은 요란하게 하늘 위로 수도 없이 폭죽을 날리고 샴페인을 터트린다. 록다운 기간동안 폭죽 판매와 폭죽을 터트릴 수 있는 장소도 제한됐다. 왁자한 실베스터를 좋아하지 않는 S과 T과 함께, 둘이 준비한 엄청난 음식을 함께 먹으며, 풍성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미래 계획을 짱짱하게 세우는 S과 T를 따라 몇 개 질문들에 답 해보고 함께 나누어도 보았다. 쓸 때까지도 기대가 되지 않았던 것이 함께 읽고 나누는 시간이 되니 내 삶에 이 것들이 이루어진다면 참 좋겠다는 마음으로 가득찼다.     

2020년 후회하는 일
-내게 일부만을 말하는 A에게 서운해하고 말을 함부로 했던 것
-B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호의를 계속 거부했던 것
-다른 사람에게 은근하게 무안을 주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pc) 않다고 비난했던 것
-몸과 마음을 혹사시킨 것

2021년의 나 
-나의 감정을 존중하며 때로는 No라고 이야기하는 나
-나를 함부로 하는 사람, 자기 감정대로 나를 대하는 사람과 거리두는 나
-규칙적으로 아침식사, 점심식사,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맛을 음미하는 나
-구글 번역기를 덜 이용하고, 나의 단어,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말을 하는 나
-몸과 마음을 보살피는 나
-다시 사랑하는 나

2021년 나와 함께 했으면 하는 것들
-촛불, 색연필과 엽서, 견과류
-글쓰기, 필사, 차 또는 커피 한 잔
-누군가와의 touching, 샤워 후 로션, 버리고 얻기
-Käthe Kollwitz Museum, Bairawies
-긴 편지, 핸드메이드 엽서, 점점 나아지는 나의 에세이
-함께 산책하기
-보온병


2021/1/1

온 힘을 끌어모아 친구들에게 새해인사를 나누었다. 우리의 희망대로 올해는 친구들도 만나고, 여행도 다니고, 마스크를 쓰지 않고 슈퍼나 상점에 갈 수 있을까? 막연함과 불확실함,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속에서 우리의 이런 기대는 어디에 가 닿을까. 마음에 드는 이모티콘을 최대한 발휘하며, 젖먹던 힘을 다해 한자 한자 마지막 메일을 마저쓰고 노트북을 덮었다. 그리고 언니와 형부에게 진심을 담아 메시지를 남겼다. 

하나님께 감사하다. 나에게 아빠와 엄마, 오빠와 언니를 주신 것. 우리가 가족이었다는 것, 그렇게 가까웠고, 이제는 그게 아니어도 여전히 가깝게 느껴진다는 것은 기적이다. 사랑하는 Y. 나에게 이런 멋진 사람을 엄마로 보내주신 것에 정말 감사하다. 엄마를 통해 나는 세상에 나왔고, 엄마를 닮아 이렇게 사랑에 목매단다. 사랑이 있어 살 수 있고, 사랑이 없어 슬프다. Y가 내 엄마라는 게 나는 너무 좋다. 사랑스런 존재. 사랑인 존재. 언니와 형부, 새언니와 오빠. 착하고 성실한 사람들. 나는 이들과 한 세대라는 것이 감사하고 든든하다. 어떻게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고 이 모든 것을 책임지며 살 수 있을까. 그에 비해 나는 아무런 책임도 부담도 지지 않으려는 비루한 존재다. 

이런 비루한 존재도 그래도 사랑받을 수 있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안다. 내가 남들이 말하는 대단한 인생을 살고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인생마저 비루한 것은 아니다. 나의 비루성도 나름 존재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내가 스스로 나를 존중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존중하겠어. 어진아, 비루한 존재라고 말해서 미안해. 너는 존귀해. 너도 나름 괜찮은 삶을 살고 있어. 우리 올해 잘 지내보자.

침묵 속에서 춘 혼자만의 춤과 같이
몹시 보잘것없고도
몹시 그럴듯한
그런 하루가 다녀간다
-김소연 ‘스무 번의 스무 살’


2021/1/4 

독일에 와서 처음으로 한국에 소포를 부쳤다. 그동안 나는 왜 이리 (쳐) 받기만 했을까. 무언가를 주는 사람들을 보면 참 신기하다. 대표적으로 M. 나는 자다 깨도 그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E는 어떻게 배번 편지 한통 달랑 보내는 내게 그렇게도 정성스럽게, 하나하나 가장 좋은 것으로, 물건 값만큼 비싼 배송료를 지불하고 내게 소포를 보낼 수 있는 것일까. 

승려에게 무언가를 제공하는 것은 영적인 이익을 얻는 행위였다. 그래서 그 교환에서는 교환을 하는 양쪽 모두가 서로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다. 그릇을 엎는 행동은… 그 어떤 종교적 의식도 참여할 수 없게 하는 것, 그들과의 연을 끊어 버리는 것이었다… 받기를 거부한다는 것은 그 대가로 무언가를 내어 주는 것 역시 거부하는 것이며, 동시에 속세의 사람을 종교인의 삶과, 영적인 삶과 이어 주던 끈을 끊어 버리겠다는 뜻이었다.– 리베카 솔닛 <가깝고도 먼>

친구들의 주는 행위, 나의 받는 행위를 이렇게 해석한다면 얼마나 코웃음이 날 일인가. 그들은 나를 통해 영적인 이익을 얻을 마음이 코딱지 만큼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내게 보여준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그러다 다음 구절에서 무릎을 탁 쳤다. 

동일시라는 말은 나를 확장해 당신과 연대한다는 의미이며, 당신이 누구와 혹은 무엇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정체성이 구축된다. 신체적 고통이 자아의 신체적 경계를 정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동일시는 애정 어린 관심과 지지를 통해 더 큰 자아라는 지도의 경계선을 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정신적 자아의 한계는 더도 덜도 말고, 딱 사랑의 한계다. 그러니까 사랑은 확장된다는 이야기다. 사랑은 끊임없이 뭔가를 덧붙여 가고, 가장 궁극적인 사랑은 모든 경계를 지워버린다.

받기만 하는 나의 모습은 내가 가진 사랑의 한계, 딱 그만큼의 한계 였다. 친구들이 내게 보여줬던 모습은 경계가 지워진, 나조차도 사랑하지 못한 나를 품은 사랑이었다. 2015년 4월, E는 C교수가 내게 했던 짓을 더듬더듬 말하는 내 앞에서 슬프게 울었다. ‘사랑이었을까? 내가 잘못했던 것은 아닐까?’ 혼란스러워 온전한 사고를 할 수 없어 보지 못한 나의 아픔을 대신 아파하고 나를 위로했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경계를 지워버린 사랑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2021/1/7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누군가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 내가 누구에게도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고 그 사람의 처지가 되어보지 못하고, 어떤 공감도 어떤 이해도 할 수 없는 사람은 아닌가 하는. 누구도 나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나누지 않고, 누구에게도 나의 어려움을 나눌 수 없는, 그런 삶이 바로 지금의 나의 삶은 아닌가. 

코로나로 철저하게 1인 가구 생활을 한다는 것은, 2인 이상 가족이 알 수 없는, 2인 이상 가족의 생활을 알바 없는, 그런 삶이다. 혼자 일하고, 혼자 책을 읽고, 혼자 글을 쓴다. 혼자 일어나 요리를 해 끼니를 챙기고, 뉴스를 보거나, 맥주를 마시고, 감자칩을 먹고, 커피나 차를 마시는 것도 혼자한다. 혼자 인터넷을 떠돌다가 매트릭스를 눕혀 혼자 잠이 든다. 

사실 아무도 안만나고 아무하고도 대화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지난 몇 주 동안 많은 사람들을 대면해 만났고, 온라인으로도 만났다. 말들을 쏟아냈고, 웃었고, 같이 음식도 나누었다. A와는 섹스까지 했다. 그런데도 내가 느끼는 이 혼자의 삶이란 무엇일까.


2021/1/8

읽기가 어려운 메일이었고, 가슴이 울렁거렸다. 나는 알고 싶다. 어떤 것에 내가 이리도 울렁거리는지. 비겁함. 정직하지 못함. 변명. 내가 그를 참지 못하겠는 부분이 이거다. 티내지 못하고, 감추고, 뒤로 슬쩍 결국 자기가 원하는 것을 올려놓는. 말만하고 행동하지 않는. 입으로만 좋은 사람이고 싶은. 자신의 실수와 부족함을 마주하기를 놀랍도록 두려워하는. 누구도 바뀌지 않으니 내가 바뀌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나도 변하지 않은 존재니 도돌이다. 어쩌면 더 일찍 포기 했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한다. 아마도 그도 내가 없어지는 것이 오히려 편할 수 있겠다. 


2021/1/10

오늘까지였던 라이트 록다운이 1월 말까지 연장됐다. 가족들과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서 작년 11월 부터 시작된 조치였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없는, 가족 방문을 하지 않은, 불꽃놀이가 없는 비교적 조용한 실베스터를 보내고 새해가 되었지만, 감염자 수와 사망자 수가 줄어들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우리는 길에서 글루바인을 마시고 부어스터를 먹고, 기차를 타고 가족을 방문하고, 불꽃을 터뜨리고, 친구와 크리스마스 파티와 신년모임을 했으니까. 

오랜만에 만난 M는 코로나와 독일정부에 대해선 여전히 화가 나 있었다. 코로나는 늘 있어왔던 여느 바이러스와 다름없고, 이 정도 감염자와 사망자는 늘 있었다고. 이 정부의 꼬라지는 거의 커뮤니즘에 가깝다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갔을 때 우스꽝스러운 거리두기를 하면서 일을 해야 하는 거라면, 자신은 일찍 퇴직을 할 거라고 말했다. M는 음악가로서의 자유로움과 고귀함(고상함, 우아함)을 잃고 싶지 않아하는 것 같았다. 나는 M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플 수도 있는 건데, 아파서는 안될 것 같은 날이 길어지고 있다. 갑자기 목이 칼칼해지거나 기침이 나올 것 같으면 바로 ‘이러면 안되는데, 참아야해’라는 생각이 든다. 기침이라도 하면 괜히 “알레르기인가봐, 갑자기 사래가 들렸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덧붙인다. 내 기침에 어떤 이의 “Gesundheit!(건강!)” 말 한마디가 그렇게 반갑고 기분 좋을 수가 없다. 요즘은 누가 기침이라도 하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거나, 소스라치게 놀라며 멀어지기 때문이다. 

1월 말이 되면 괜찮아질까? 봄이 되면 괜찮아 질까? 여름이 되면 잠잠해 질 수 있을까? 계속 이렇게 만남을 줄이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을 잘 씻고, 이리 외롭고 조심하며 살면 다 괜찮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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